지난 피드에서는 임오군란(보수유생-농민 VS 민씨정권-청,일)을 살펴 보았다.
임오군란의 결과로 제물포 조약, 조일수호조규 속약,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맺고, 청의 내정간섭이 심화 되었다.
갑신정변을 보기 이전에 민씨정권에 반하는 임오군란 이후 개화파는 둘로 나뉘어졌다.
나뉜 원인은 임오군란의 결과로 청의 내정간섭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온건개화파 - 사대당 - 친청 - 양무운동 - 동도서기론 (대표 :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급진개화파 - 개화당 - 친일 - 메이지유신 - 문명개화론 (대표 :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청의 내정간섭이 심해졌으니 친일 개화당인 급진개화파의 반란을 일으킬 것인데 그것이 갑신정변이다.
cf) 여기서의 친일은 현재의 그 친일의 의미와 다름
갑신정변의 핵심 Point
- 갑신정변 배경 및 전개
- 갑신정변 급진개화파의 주장(14개조 개혁정강)
- 갑신정변의 결과
- 갑신정변 이후 정세
- 갑신정변 인물사
<갑신정변 배경 / 전개>
배경
1. 임오군란 이후 청의 내정간섭 심화 / 친청 민씨 정권의 개화당(급진개화파) 탄압
2. 김옥균이 일본 차관 도입 실패 (차관 : 나라 대 나라로 자금 빌림)
3. 청-프 전쟁으로 조선 주둔하는 청의 군대 일부 철수
4. 일본 공사의 재정과 군사 지원 약속(일본이 정변 일으키게 도와준다고)
전개
1. 우정총국(현 우체국) 낙성식(건물 완공식) 계기로 정변 발발
2. 김옥균이 왕과 왕비를 창덕궁-> 경우궁으로 이동(경복궁X)
3. 민씨 정권 요인 살해
4. 개화당 정부 수립 -> 14개조 개혁정강 발표
5. 왕과 왕비가 다시 창덕궁으로 이동
<갑신정변의 결과>
1. 청군이 진압 - 일본군 패퇴
2. 일본 공사관 소실(백성들이 화나서 일본 공사관에 또 다시 불지름)
3. 청군의 진압으로 청의 내정간섭이 더 심해짐
4. 한성조약 체결(조-일, 1884.11) : 일본 공사관 신축비 부담, 배상금 13만원
5. 톈진조약 체결(일-청 1885.3) : 청/일 양군 모두 조선에서 철수 / 일본이 조선에게 행해지는 파병권을 청과 동일하게 얻어냄(당시 청이 더 강력했으니, 일본으로서는 동등한 입장 자체가 이득인 것)
<급진개화파의 갑신정변 14개조 개혁정강>
14개조 개혁정강은 다른 홍범14조, 헌의6조, 폐정개혁안 등 헷갈리게 보기 선택지를 주니까 키워드로 확실히 알아두자.
1. 청에 잡혀간 흥선 대원군을 돌아오게 하고, 청에 대한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 -> 청에대한 사대관계를 폐지하자
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세워,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 -> 신분제 폐지
3. 지조법을 개혁하여 관리의 부정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며, 국가재정을 넉넉하게 한다.
->조세제도 개혁하자(토지제도 개혁 X) / 뒤에 배울 동학농민 운동 폐정개혁안 12조와의 차이
4. 내시부를 없애고, 그 중에 우수한 인재를 등용한다. (전근대적 기관 폐지, 우리가 아는 그 내시 맞음)
5. 탐관오리를 처벌하자
6. 각 도의 환상미를 영구히 받지 않는다 -> 환곡제 폐지
7. 규장각을 폐지한다 -> 국왕의 권한 제한 목적
8. 급히 순사를 두어 도둑을 방지한다-> 일에서 가져온 근대적 경찰제도 도입
9. 혜상공국을 혁파한다 -> 보부상의 특권 폐지
10. 유배, 금고형에 처해진 관리 선별해서 석방하자
11. 4영을 합하여 1영으로 하되, 영중에서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를 급히 설치한다->군제개혁
12. 모든 재정은 호조에서 통할한다.-> 재정 일원화
13. 대신(장관같은)과 참찬(고위관리 같은)은 의정소(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한다. -> 입헌 군주제 하자!
14. 의정부, 6조 외의 불필요한 기관을 없앤다
* 볼드체를 키워드로 해서 유의해서 잘 알아두도록 하자
<갑신정변 이후 정세>
1. 조선을 두고 청-일이 대립이 첨예
2. 거문도 사건 :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조선책략에 써 있던 러시아의 남하)를 막겠다고 거문도에 불법 점령
3. 한반도 중립화론 : 위 두 사건을 계기로 유길준과 독일의 부들러가 조선 중립화론을 추진한다
4. 방곡령사건 : 함경도(관찰사 조병식), 황해도(관찰사 조병철)-> 나중에 다루도록 하자
<인물사>
개인적으로 사람 이름은 잘 외우는데, 영화/책의 주인공 이름이나 뜬금없는 인물들의 이름을 잘 암기를 못한다 ㅠㅠ
오늘은 찬찬히 급진개화파 네 명의 인물사만 다루고 틈틈이 보면서 익숙해 지기 바라자
* 나머지 부족분은 나중에 또 인물사로 소개하겠음
김옥균
- 1870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개화사상 습득 이후 개화당 형성
- 1882 임오군란 이후 청국에 의해 개화당 동지들과 함께 탄압을 받았고,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일본을 방문
- 1883 일본과의 차관 교섭 실패
- 1884 갑신정변 실패->일본 망명
- 1894 상하이로 망명
박영효
- 1872 철종의 딸 영혜옹주와 혼인
- 1870년대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개화사상 익히기 시작
- 임오군란의 수습으로 3차수신사 김옥균과 함께 일본으로
- 1884 갑신정변 실패->일본 망명
- 1894 일본에 돌아와 2차 김홍집 내각에 내부대신으로 개혁을 시도(김옥균과 차이점)
- 1895 삼국간섭 이후 역모 혐의를 받고 다시 일본 망명
- 1907 조선에 다시 귀국하여 이완용 내각 궁내부 대신에 임명
- 1910 한일 병합 이후 조선식산은행, 동아일보 초대사장, 중추원 의장
서광범
- 1883 보빙사로 민영익과 함꼐 미국 시찰
- 1884 갑신정변 실패로 일본 망명 그리고 다시 미국 망명
- 1894 조선 귀국 후 2차 갑오개혁 당시 법부대신에 임명
- 1895 을미사변 이후 학부대신 임명, 주미특명 전권공사로 활동
- 1896 아관파천으로 친일 내각이 붕괴, 친러정권에 의해 공사직에서 해임
유길준
- 1881 조사시찰단(to 일본)에 참가
- 1883 보빙사에 참가하여 미국 다녀옴
- 1885 갑신정변 주도한 개화파로 간주-> 구금된 상태에서 <서유견문> 집필 / 거문도 사건으로 조선 중립화론 추진
- 1894 갑오개혁 적극 참여, 군국 기무처 회의원으로 참여
- 1895 을미개혁 때 단발령 주도, 아관파천 이후 일본에 망명
- 1807~1902 국어문법서인 <조선문전> 저술
- 1909 <대한문전> 저술
'핫해지려면 공부해야쥬? > 근현대사 노베이스 공부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현대사] 갑오개혁 차차차! (2) | 2020.10.30 |
---|---|
[근현대사] 동학 농민 운동(1894), 왜 일어났나? (1) | 2020.10.29 |
[근현대사] 임오군란 (1) | 2020.10.26 |
[근현대사] 1880년대 초 개화정책과 위정척사운동 (1) | 2020.10.23 |
[근현대사] 강화도 조약 및 서양과의 통상 수교 (5) | 2020.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