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 되고 1880년대 부터 개화를 하느냐 마느냐의 두 그룹으로 나뉘어 진다
cf) 진보측 : 정부(민씨정권), 개화파 VS 보수측 : 보수 유생(성리학 수호)
일단 정부의 정책은 개화를 하자이다(민씨정권이 일단 개화파) 이유는 2차 수신사 김홍집이 들고온 <조선책략>덕분이다.
핵심 포인트는
- 1880년대 초 정부의 개화 정책 기구
- 개화로 인하여 외국으로 보내진 사절단의 이름과, 내용 + 순서
- 그리고 개화를 반대하는 운동인, 위정척사 운동의 전개
이렇게 되겠다
<개화 정책 기구>
- 통리기무아문 설치(1880) : 개화 정책 총괄 기구
그 아래에 12사(교린사, 군무사, 통상사 등) - 군제 개혁(1881)
별기군 들어오고 나서 구식 군대의 5군영을 2영(무위영, 장어영)으로 통합 및 개편 (이후 임오군란의 배경) - 별기군 설치(1881)
일본이 지원한 신식 군대 - 근대시설
박문국(1883) - 박영효(3차 수신사)의 건의로, 근대식 인쇄 출판 기관, 한성순보 간행
전환국(1883-1904) - 상설 조폐기관
기기창(1883) - 김윤식(영선사 to청)이 설치, 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
우정국(1884) - (우체국) 홍영식(조사시찰단 to일)
<사절단의 파견>
학습 Point
- 각 사절단의 명칭과 어디로 누가 갔는지
- 사절단 순서
(순서 일일일청일미 ->1,2차 수신사->조사시찰단->영선사->3차수신사->보빙사)
※ 해외에서 배워와서 책을 남김
-
1876.4 1차 수신사(일본) 김기수
강화도 조약 이후
귀국 후 <일동기유> 저술하여 일본의 근대 문물을 조선에 소개 - 1880.6 2차 수신사(일본) 김홍집
청나라 황준헌의 <조선책략> 가져옴 - 1881.4 조사 시찰단(=신사유람단(일본)) 박정양, 홍영식, 어윤중, 유길준
암행어사 신분으로 파견(국내의 반발 우려)
귀국후 <일본문견사건> 저술
유길준, 윤치호는 최초 일본 유학생 됨 - 1881.9 영선사(청) 김윤식
김윤식과 유학생들을 톈진 기기국에 파견
근대식 무기 제조 / 과학기술 습득
1년만에 조기귀국
기기창 설치(1883) - 1882.8 3차 수신사(일본) 박영효 (고문 : 김옥균)
임오군란 직후 제물포 조약에 따라 배상금 문제 협상
귀국 후 박영효는 <사화기략> 남김
태극기 공식 첫 사용 - 1883.7 보빙사(미국)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유길준
서양으로의 최초 사절단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의 답방
워싱턴, 뉴욕 엑스포 관람
귀국 후 농무 목축 시험장 개설(1884)
육영공원(1886)
<위정척사 운동>
보수적 유생 주도(화이론적 사관) -> 반외세 반침략 민족운동 -> 항일의병으로 계승
학습 Point
- 최익현의 5불가소(지불복궐상소) - 강화도 조약 반대 / 사료 + 인물사
- 이만손의 영남만인소 - 2차 수신사 김홍집이 들고온 <조선책략> 반대 / 사료 + 러미일중과 조선과의 관계
- 1860년대~1890년대 각각의 성격과 핵심 인물 / 특징 / 순서
1. 최익현의 5불가소
사료 파악
- 5불가소 - 왜양일체론, 개항불가론 - 일본이 아니라 서양의 앞잡이다
"왜인이라고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서양 오랑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 강화도조약을 반대함
cf) 최익현 사료
1. 5불가소 - 왜양일체론
2. 을사의병 당시 격문
+ 최익현 인물사
- 을사늑약 체결 이후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킴
- 의병을 이끌고 순창으로 진격하여 진위대와 대치
"동포끼리 서로 싸울 수 없다"
- 이후 압송 되어 쓰시마(대마도) 가서 순절
2. 이남손의 영남만인소
※ 사료를 파악해서 러시아 미국 일본 중국과의 관계를 물어본다
사료 파악하기
"러시아를 막는 방법이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인데 왜 하필 러시아를 자극하여 아무 일도 없던 미국에 일을 만드어 주며 왜구를 불러 전쟁을 자초하여 일부러 살을 깎아 부스럼을 만드시렵니까"
모르던 나라 - 미 / 싫어하거나 미워할 처지에 있지 않은 나라 - 러 / 섬겨온 나라 - 청 / 우리에게 매여 있던 나라 - 일
정부의 개화 정책 반대 - 조선책략 반대
러 - 용암포 강제 조차
미 - 운상 금광 채굴권
일 - 경의선 부설권
영 - 거문도 불법점령(러시아 남하 견제)
프 - 천주교 박해에 항의, 강화도 침략
독 - 묄렌도르프 파견
3. 위정척사 통합
개화는 진보적 성격
위정척사는 보수적 유생(성리학적 질서 수호하는) /
인물/특징/순서 중요
1860년대 위정척사 (병인양요)
- 성리학 외 다른 종교, 사상 배척하는 분위기에서 병인박해(천주교 탄압)와 병인양요(프랑스군 강화도 침략) 터짐
- 통상 반대 운동(척화주전론) / 통상 : 나라간의 서로 사고 팜 / 척화주전론 : 서양을 배척하고 맞서싸우자!
- 이항로 <화서집> <화서아언> , 기정진-> 흥선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 뒷받침
"서양 오랑캐의 화가.. 홍수나 맹수의 해보다 더 심합니다" (당시 병인박해니까 프랑스)
1870년대(강화도 조약)
- 개항 반대 운동(왜양일체론, 개항불가론) / 개항 : 항구를 열어 외국과 통상
- 강화도 조약 체결 반대
- 최익현 <면암집>,<5불가소(지부복궐상소)>, 유인석
"저들이 왜인이라고 하나 서양 오랑캐입니다" (미국과의 수교 반대)
1880년대(조선책략, 정부 개화정책 반대)
- 개화 반대 / 개화 : 새로운 사상 문물을 받아들임 = 근대화
- 이만손 영남만인소(1881)
"러시아는 본래 우리와 혐의가 없는 나라 입니다" (러시아 피하자고 미중일 손잡는거 안돼)
- 홍재학 만언 척사소(1881)
1890년대(을미사변, 단발령)
- 항일 의병 운동
- 유인석, 이소응, 문석봉, 기우만
+ 위정척사운동은 고종이 아니라 흥선의 대외 정책과 뜻을 함께 하였다.(60년대 병인양요)
+ 외양을 위한 내수를 강조(=내수외양) = 안으로는 국내 정치를 잘 다스리고 밖으로는 외놈들을 물리치자
+ 향후 위정척사파는 일본의 침략에 반하여 의병활동으로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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