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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항일 의병 운동(계승과 전개)

Chafle 2020. 11. 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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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 직후(1904) 항일운동이 두 가지 방향성으로 펼쳐집니다. (항일 의병(보수), 애국계몽(진보))

항일 의병 운동은 보수파가 일본에 맞선 운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보수파는 당시 맞서 싸우자!!!!!!!!!!!!였습니다.

한일 의병 운동을 일으킨 보수파의 사상근간은 과거 붕당의 주리론으로부터 - 위정척사 - 항일 의병 운동 - 항일 무장 독립운동으로 이어집니다.

 

학습 포인트

  • 을미의병(1895)
    -의병장, 영학당, 활빈당
  • 을사의병(1905)
    - 의병장 
  • 정미의병(1907)
    - 서울진공작전
  • 을사조약 관련 투쟁 인물사

<을미의병 1895>

  • 배경 : 을미사변, 단발령
  • 의병장 : 보수 유생 - 유인석, 이소응, 허위, 기우만
  • 아관파천을 계기로 친일정권이 붕괴되고, 고종이 단발령 철회하고, 해산을 권고 조칙이 내려지자 자진 해산하였다.
  • 동학농민 운동의 잔여 세력이 꾸린 조직(4)
    - 영학당(1898) : 영국 종교로 위장하여 정부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영학이라는 명칭 사용
                        1898.12. / 1899.5. 농민 봉기
    - 활빈당(1900-1904) : 동학농민군+을미의병 / 반봉건, 반침략 운동
    - 남학당
    - 서학당
  • 활빈당 활동과 활빈당의 대한 사민 논설 내용
    활동
    - 탐관오리와 부호(재산 많은), 일본 상인 습격-> 빼앗은 재물은 빈미에게->1905(을사조약)이후 의병 합류
    대한 사민 논설 내용
    - 토지의 균등 분배
    - 방곡령 요청
    - 철도 부설권 허용 반대
    - 금광 개발권 허용 반대

10년뒤

<을사의병 1905-1906>

  • 배경 : 을사조약(1905.11 제 2차 한일 협약)
  • 의병장 : 민종식, 최익현, 신돌석 <- 을사조약 이후 평민까지 의병장으로 참여

<정미의병 1907>

  • 배경 : 고종의 강제 퇴위(1907.7.20),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 1907.7.24.)에 따른 군대 해산(1907.7.31)
  • 군대 해산-> 시위대의 대장 박승환 자결 / 진위대 이동휘 참여
      cf) 을미개혁 친위대 진위대 -> 광무개혁 원수부 설치 - 시위대 진위대
  • 13도 창의군 창설(전국 의병 연합 부대)
  •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1908)
    - 경기도 양주 집결 : 이인영 총대장 -> 부친상으로 상치르러 중간에 떠남
    - 서울 동대문 : 허위 군사장 -> 실패
  • 합법을 위해 교전단체 승인 요청 -> 승인 실패
  • 평민이 의병장은 했으나 서울 진공작전에서는 배제(신돌석, 홍범도)
  • 서울 진공 작전 실패 후 일본의 남한 대토벌 작전 -> 간도와 연해주로 피신

<을사조약 반대 투쟁 인물사>

  • 상소운동 : 조병세, 이상설, 안병찬, 민영환
  • 자결 : 민영환, 조병세, 송병선, 홍만식
  • 을사5적 암살단(1907, 자신회) : 나철, 오기호
    cf) 을사오적은 을사조약을 통과시킨 대신 5명을 말한다 (박제순,이지용,이근택,이완용,권중현)
  • 언론 :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황성신문 게재 / 대한매일신보 영문판에도 게재
  • 정부의 협력 요청 
    - 1905 특사 헐버트 파견 - 미국 대통령의 외면(일본과의 가스라 테프트 밀약 때문)
    - 1907 헤이그 특사 파견 - 헐버트+ 이준, 이상설, 이위종(일본이 방해로 못들어가) 이후 고종 강제 퇴위

(정미의병 전쟁 이후)

  • 장인환, 전명운 의거(1908.3.) - 외교 고문 스티븐스(친일파)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
  • 안중근 의거(1909.10.) -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히로부미 사살 / 이후 뤼순 감옥 / 옥중 동양평화론 저술(1910)
  • 이재명 의거(1909.12.) - 매국노 이완용 암살 시도(실패)

 

<최익현 인물사 1833-1907>

1868 흥선대원군 경복궁 중건 반대 상소
1873 흥선대원군 하야 상소 (서원 철폐를 반대)

1876 강화도 조약 반대 : 5불가소(왜양일체론, 지부복궐상소)

1895 단발령 반대
1905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을사오적 처단 주장

1906 을사의병 때 태인에서 봉기 - 포고팔도사민
1907 스스로 체포되어 대마도에서 순국

포고팔도사민
난신적자가 어느 때인들 없으리요마는 어찌 이번같이 도장을 마음대로 찍고 조약을 맺은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같은 자들이 있겠습니까..

 

<안중근 인물사 1879-1910>

1906 을사조약 이후 삼흥학교 설립

1907 연해주에서 의병장 활약 (참모중장)

1909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히로부미 사살

1910 뤼순감옥에서 사형(옥중에서 동양평화론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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